Artwork
Education of Pan

Education of Pan is an oil painting by the Early Renaissance artist Luca Signorelli. It dates from 1496 and is held in the collection of the Bode Museum.
About this work
The Education of Pan은 루카 시뇨렐리의 그림이다. 1490년에 제작되었다.
이 그림은 원래 베를린 카이저-프리드리히-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플락투름 프리드리히샤인으로 옮겨졌으며, 1945년 5월 화재로 소멸되었다.
이 실전된 작품을 제작한 화가 루카 시뇨렐리에 대해 더 알아볼 수 있다.
개요
피렌체에서 수세기간 개인 소장을 거쳐 1873년 베를린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 소장품이 되었으나, 1945년 5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플락투름 프리드리히샤인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The Education of Pan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루카 시뇨렐리가 약 1490년경에 제작한 실전된 신화화이다. 테므페라로 캔버스에 그려졌으며 194 x 257cm의 크기로, 로렌초 데 메디치가 의뢰한 것으로, 메디치가 시뇨렐리에게 맡긴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품 중앙에는 왕좌에 앉은 파우신이 목가적인 풍경 속에 벌거벗은 옷을 입은 인물들과 함께 묘사되어 있다. 피렌체에서 수세기간 개인 소장을 거쳐 1873년 베를린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 소장품이 되었으나, 1945년 5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플락투름 프리드리히샤인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오늘날 이 그림은 흑백 사진, 소형 컬러 사진, 그리고 한때 몽펠리에의 개인 소장품에 있던 복제품을 통해서만 전해진다. 이 작품의 소실은 전시기 문화재 파괴로 인한 가장 참혹한 피해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주제와 의미
이 그림의 주제는 음악, 자연, 목가적 영역과 관련된 신 파우스에 관한 고전 신화에서 유래한다. 시뇨렐리의 구도에서 파우스는 중앙의 왕좌에 앉아 있으며, 염소 다리를 꼬고 상반신에는 별무늬 망토를 걸치고 하반신은 드러난 채 그 특유의 시린크스, 즉 파이프를 들고 있다. 그 주변에는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인물들이 있는데, 지팡이와 가방을 드린 노인, 덩굴잎으로 생식기를 가린 누워 있는 남성, 긴 지팡이나 파이프를 든 서 있는 여성 누체, 관람자에게 등을 돌린 채 관악기를 연주하는 젊은이 등이 포함된다. 이 장면은 여러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다: 파우스의 목가적 기예에 대한 교육이나 입문, 그의 승리나 왕국, 우주 조화에 관한 신플라톤주의적 알레고리 등이다. 프랑스어 위키백과 자료는 남성의 네 시기와 여성의 세 시기가 파우스가 상징하는 계절 순환과 관련하여 표현되었다고 기록한다. 주변 인물들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어떤 해석은 이 장면을 로렌초 데 메디치 주변의 신플라톤주의적 서클과 연결짓고, 파우스를 음악을 통해 생명의 순환을 조율하는 자연의 우주신으로 읽는다. 이 구도는 기독교 주제에 전용되던 성화담화의 형식을 이교적 주제에 적용한 것이다. 왼쪽 여성 인물의 지팡이에 부착된 카르텔리노에는 화가의 서명 LUCA / CO / RTONEM이 새겨져 있었다.
기법과 화풍
이 그림은 테므페라로 캔버스에 제작되었는데, 이 점은 바사리가 판넬로 오인한 것에 대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4 x 257cm의 큰 가로형 포맷은 화면 폭을 가로지르는 넓은 프리즈 형태의 인물 배치를 가능하게 했다. 현존하는 사진의 시각적 증거에 따르면, 매끄럽게 혼합된 붓놀림과 정교한 근육 묘사, 빛과 그림자 사이의 부드러운 전환을 보여준다. 색조는 짙은 갈색과 차분한 녹색, 차가운 청색이 주를 이루었으며, 살색은 따뜻한 그림자 톤으로 표현되었다. 빛은 인체에 선택적으로 비추어, 조명 받은 피부와 주변의 어둠 사이에 강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구도는 단일 초점이 없는 대신, 시뇨렐리의 성숙기 화풍을 보여주는 복잡하고 상호 연결된 인물 배치를 특징으로 한다. 배경에는 어두운 나뭇잎, 기마병이 새겨진 개선문으로 보이는 건축물, 그리고 초승달이 보이는 황혼의 하늘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인 효과는 시뇨렐리의 해부학적 사실주의와 역동적 자세에 대한 숙련을 보여주며,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받은 근육질의 이상화된 누체를 드러낸다. 인물의 처리, 특히 지팡이를 든 노인과 누워 있는 젊은이,는 아레초의 아담족 천공화에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영향과 연결되었다.
역사와 소장 경위
이 그림은 1489년에서 1490년 사이, 시뇨렐리가 비키 제단화를 완성한 직후 로렌초 데 메디치의 의뢰로 제작되었다. 조르조 바사리는 그의 예술가 전기 초판에서 이 작품을 로렌초를 위해 그린 '벌거벗은 신들'의 그림으로 기록했으나, 캔버스가 아닌 판넬로 잘못 언급하였다. 로렌초가 1492년 사망한 후, 이 그림은 거의 200년간 목록에서 사라졌다. 1687년 팔라초 피티에서 재발견되었을 때는 벌거벗은 인물들이 그려진 바지로 가려져 있었다. 1865년에는 산 가에타노 근처 팔라초 토르나부오니의 코르시-살비아티 컬렉션으로 옮겨졌다. 화가 겸 복원가 안젤로 트리카가 1869년 다락에서 이 그림을 재발견하여 덧칠을 제거하고 바사리가 기술한 작품임을 알아보았다. 코르시 추기경은 나체에 충격을 받아 트리카에게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영국 수집가 제넷 로스는 저렴하게 매입하여 되파는 것을意도하였다. 1869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제안되었으나 나체 문제로 거절당했다. 1873년 베를린 게멜데갈레리에 부관장 빌헬름 폰 보데가 로스가 지불한 금액의 3배를 주고 매입하여 공공 소장품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베를린 박물관의 다른 대형 그림들과 함께 플락투름 프리드리히샤인으로 옮겨져 보관되었으나, 1945년 5월 소이탄으로 인한 화재로 소멸되었다.
맥락
The Education of Pan은 로렌초 데 메디치의 피렌체 문화적 토양에서 탄생했으며, 이곳에서는 신플라톤주의 철학과 고전 신화의 부활이 번성하였다. 이 그림은 피에트로 스카르펠리니에 의해 '신플라톤주의적 일파의 가장 중요한 인물화'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카레지 별장에 모이던 교양 있는 서클을 가리킨다. 이러한 지적 환경에서 고대 신화는 철학적이고 심지어 기독교적인 시각을 통해 재해석되었다. 파우스를 선택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 이름은 그리스어로 '모든 것'을 의미하며, '코스모스'와의 언유를 통해 코시모 데 메디치와 연결될 수 있었다. 이 주제는 당대 문학적 관심과도 연결되었는데, 롱고스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마르실리오 피치노의 번역을 통해 전해진 테오크리토스와 베르길리우스의 목가시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 그림은 이교적 고대와 당대 기독교 문화를 화해시키려는 더 넓은 르네상스적 과업을 상징한다. 선구적인 미술사학자 버나드 베렌슨은 이를 '우리 유산에서 가장 매혹적인 예술 작품 중 하나'로 유명하게 평가하였다. 1945년 이 작품의 소멸은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의 수많은 다른 걸작과 함께 전시기 문화재 손실 역사의 중대한 순간을 상징한다.
영향과 유산
The Education of Pan이 1945년 5월에 소멸된 것은 20세기 실전된 예술 작품들 중 상징적인 사례로 자리 잡았다. 그 운명은 베를린의 박물관들이 대형 규격의 가장 귀중한 그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집중시킨 플락투름 프리드리히샤인에 소이탄이 떨어지면서 결정되었다. 타워를 집어�킨 화염은 시뇨렐리의 걸작뿐 아니라 카라바조, 라파엘로 등 수많은 거장들의 작품도 함께 삼켰다. 오늘날 이 그림의 전생은 전적으로 사진 기록과 학술적 재구성에 의존하고 있다. 현존하는 흑백 사진, 소형 컬러화 버전, 그리고 한때 몽펠리에 개인 소장품에 있던 복제품이仅 시각적 기록의 전부를 구성한다. 이 그림은 정확히 그 소실 때문에 학술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주제, 의미, 시뇨렐리 작품 세계 내 위치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활발하며, 최근 학술에서는 베르길우스에 대한 세르비우스의 주석과 파우스가 사랑에 패배한 주제와 연결짓고 있다. 1869년 내셔널 갤러리가 나체를 이유로 거절한 것도 빅토리아 시대 박물관 역사의 중대한 에피소드로 남아 있다. 시뇨렐리의 평판에 있어, 이 그림은 신화적 주제와 메디치 궁정에 대한 그의 참여의 정점을 상징하는데, 이 단계는 로렌초의 사망과 이어진 정치적 격랑으로 중단되었다.
Artist & collection
Artist
Luca Signorelli (c. 1441/1445 – 16 October 1523) was an Italian Renaissance painter from Cortona, in Tuscany, who was noted in particular for his ability as a draftsman and his use of foreshortening. His massive frescos…


















